승려도 노동자다, 대법원 판결
상태바
승려도 노동자다, 대법원 판결
  • 운판(雲版)
  • 승인 2022.11.29 10: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주지 앞에 파리목숨 부전의 삶
마곡사 진각스님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종교단체 사용자의 일방적 부당해고는 위법
마곡사 전경
마곡사 전경

11월 17일 대법원은 사찰에서 근무하고 있는 모든 승려 등 종사자들(정신적 노동 및 육체적노동 등)을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3호에 의해 근로자로 인정, 종교단체 사용자의 일방적 부당해고는 위법하다며 확정 판결했다. 마곡사에서 부전살이하던 진각스님이 하루아침에 해고당한 뒤 청구한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에 대한 판결이다. 어쩌면 당연한 이 판결은 한국불교의 현실을 비추어볼 때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미 2014년 종단 고위층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 있었다.

“1994년 개혁불사를 통해 엄정하고 효율적인 종단운영체제가 마련됐지만 여전히 대다수 스님들은 기본생활 대책 부재로 인해 불안정한 떠돌이 삶을 영위하고 있다. ‘예산회계법’과 ‘분담금 납부에 관한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소유공동체’와 ‘사유화·각자도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조계종이 이를 계속 방관한다면 결국 종단체제가 붕괴될 것이다.”

2014년 10월 1일, 당시 교육원장이던 현응 스님이 ‘종단개혁 20주년 기념 3차 세미나-종단개혁불사의 과제와 전망’ 기조발제에서 한 말이다.

탁발로 하루의 끼니를 해결하셨던 부처님 이래 불교공동체는 무소유 평등 공동체를 지키고자 노력해왔다. 그러나 현실은 이념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일부 기득권 승려들은 무소유가 아닌 불교자산가가 되어 거대한 부를 축적하여 사유화했다. 절뺏기 밖에 배운 것 없다던 자승 전 총무원장은 퇴임 후 종단에 대한 지배를 더욱 강화했다. 주요 사찰은 기득권 승려들이 거래하는 상품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그는 불교에 대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현실정치에 깊숙이 개입한 승려대회 개최로 승가공동체를 정치 하수인으로 전락시켰다.

기득권이 아닌 승려들은 어찌 살고 있을까? “기본생활 대책 부재로 인해 불안정한 떠돌이 삶”을 살고 있음이 이번 대법원 판결로 확실하게 드러났다. 이른바 주지가 아닌 부전의 피폐한 삶이다.

사찰의 기본적 일상인 예불, 기도, 불공에 대형사찰 주지가 참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형사찰 주지는 본사와 총무원 정치에 바빠서 사중에 붙어있지도 않는다. 그럼 그 일은 누가 하나? 이른바 부전이라고 불리는 노동자 승려다.

겉으로는 주지나 부전이나 구별하기 어렵다. 머리 깍고 승복 입은 삭발염의(削髮染衣) 출가 수행자로써 종단 승적을 가지고 있는 평등한 관계다.(일부 사찰은 조계종 승적을 가지지 못한 타종단 승려를 부전으로 활용키도 한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면 주지 임명장을 끊은 재산관리인과 피고용인의 권력관계다. 피고용인은 자신을 고용한 주지의 뜻에 따라 하루아침에 일자리와 주거를 잃을 수 있는 불평등관계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이런 불교계 내부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 최소한의 제동을 건 것이라고 하겠다.

“종단은 승려를 버렸으나 국가가 승려의 권리를 감싸 주었다는 것은 씁쓸함이 없지 않다.”는 보도자료의 문면은 이시대 출가 재가 불자들에 대해 울리는 경종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