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 희망나누기 일곱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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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 희망나누기 일곱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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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5.12.20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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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불교운동연합 전일곤, 아픈 동지 지원 선정
익명의 독지가가 뿌린 씨앗이 7번째로 이어져

6월항쟁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7번째 희망나누기 행사가 12월 19일 노무현시민센터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민주화운동 그 기억과 일곱 번째 희망나누기’라는 이름으로 거행된 성금 전달식에는 민주화운동 동지들과 가족들이 대거 참석했다.

애초 시작은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익명의 독지가가 민주화운동 유자녀들을 위한 일에 써달라며 성금을 기탁한 일에서 시작했다. 6월항쟁 기념사업회에서는 성금을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을지 중지를 모은 끝에 민주화운동 유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로 하고 대상자를 선정했다.

당초 1회성으로 끝날줄 알았던 장학금 지급은, 뜻에 공감하는 이들의 성금 동참으로 이어졌고, 익명의 독지가 또한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몇년간 성금을 기탁하겠다고 약정함으로써 중단 없이 이어질 수 있었다.

유자녀 장학금을 넘어서서 병고에 신음하는 동지들에게 병원비를 지원하고, 취준생 등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희망의 단초를 제공하자고 매달 일정액을 1년간 지원하는 행사로 확대되었다.

이날 행사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는 민중의례에 이어 문국주 6월민주항쟁 계승사업회 이사장이 여는 인사말을,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명예이사장이 축사를 했다. 이용성 희망나누기 운영위원은 1회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며 감사하는 편지를 대독하였다.

연성만 희망나누기 운영위원장은 올해 대상자를 선정하면서, 아픈 동지에 대한 지원사업에 민중불교운동연합에서 활동한 전일곤 동지가 포함되었다.

전일곤 동지는 수원지역과 경기도불교청년활동을 해왔으며 민중불교운동연합 창립부터 함께 활동해왔다. 세월이 흘러 항암치료를 힘겹게 받고 있으나 전이가 심해 쉽게 나아지지 못하고 있었다. 민중불교운동연합 동지들은 6월항쟁기념사업회에 병고를 겪고 있는 전일곤 동지의 치료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추천장을 써 보내어 대상자로 선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용성동지와 이남재 동지 등이 신청과 추천에 애썼다.

이날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전달행사가 끝난 후 송년회를 겸한 뒷풀이가 이어져 오랜 동지들이 반가운 만남을 이어갔다.

아래는 전일곤 동지와 수원불청에서 오래 함께 활동한 이종구 불자가 희망나누기 수상을 기뻐하며 올린 글이다.

 

희망나누기 대상자 선정에 대한 소감

수원불교청년회 27대 회장 이종구

 

전일곤형이 민주화운동가 희망나누기 추천대상자로 선정된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벌써 4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갔지만 참으로 많은 생각이 들고, 특히나 돌아가신 형의 어머님이 "참 다행이다"라고 하실 것만 같아 더더욱 펄쩍 뛸듯이 기분좋은 일입니다.

암담했던 85년 당시, 형과 함께했던 기억을 돌아보자면 형은 독서와 탈춤과 풍물을 전수하고 싶어 했던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수원불교청년회 활동을 하면서는 우리와 함께 분단의 민족문제와 불교와사회, 전태일평전등 독서를 권했고 수원불교학생회 학생들에게는 탈춤반을 만들어 탈춤전수를 시도하였고, 대불련경기지부에는 풍물반을 만들어 함께 어울어져 뒹굴며 사물패 결성을 전수한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의식이 깨어있는 EYC 사람들 그리고 야학운동을 하는 청년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전파하고 도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말기암 투병중이던 어머님과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막내여동생이 있는 집안의 유일한 가장이던 형이 민중불교운동연합 활동으로 인해 감옥에 갔을 때 함께 활동했던 지인과 도반들은 독재시대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굴렀지만 깜깜하기만 했던 시대상황과 맞물려 대책없는 살림살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여 민중불교운동연합에서 발간하는 민중법당을 판매하며 전일곤법우 돕기 모금운동을 했었습니다.

당시 민중법당의 내용 중에 광주항쟁의 기록과 사진들이 주로 실려있었는데 평소같았으면 거부하고 시비걸었을 스님들과 신도들도 다행히 함께 신행하던 법우를 돕자는 명분 때문인지 흔쾌히 받아들고 지갑을 열고 도와주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여러가지 고민끝에 병마로 거동이 안되는 어머님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막내동생의 학업과 살림을 유지하는 길은 공동생활을 하는 수 밖에 없다고 판단되어 13평짜리 화서주공아파트 39동을 월세로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공동생활은 안방에는 형의 어머님과 막내동생 미희가 생활하고 작은방에 신건재형과 나 그리고 형에게 풍물을 배웠던 이오균이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오균이는 동양매직 생산직에 근무하였고 나는 양복점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돌아보자면 어머님 돌아가시기 얼마전 형이 석방되었을 때 모진고문으로 피폐해진 몸을 무료로 치료해 주었던 얼굴도 모르는 서울의 모 한의사님을 지금도 마음속에서 존경하는 은인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얼굴을 뵙지는 못했지만 그런분들이 있어 나에게는 우리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을거라는 믿음을 갖게 해준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형이나 우리의 생활을 보자면 한강 작가의 표현대로 "껍데기 없는 달팽이"의 삶과 같습니다.

모쪼록 '희망나누기 대상자'로 선정된 일곤형이 '희망나누기'라는 껍질로 생활을 잘 보호하여, 큰 곤란없이 병마를 잘 극복하고 활력있는 생활을 잘 유지해서 또다른 희망을 전파하는 일에 큰 보탬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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