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대사, 조선의 최고 협상가, 불교인문학강좌 7강,
고승과의 대화 7번째 시간, 사명대사 국난극복의 호국불교 세속의 욕망 뿌리친 수행자
(제 6강은 강연자의 요청에 의해 촬영 동영상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어느덧 후반부를 향해 달려가는 ‘고승과의 대화’ 7번째 주인공은 사명대사다. 조선 불교를 다룰 때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서산, 사명 두 분 가운데 사명대사를 먼저 다룬다. 이날 강의는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의 오경후 박사가 맡았다.
사명대사의 법명은 유정(惟政, 1544-1610), 호는 사명(四溟) 또는 송운(松雲), 별호는종봉(鍾峯)이고 자는 이환(離幻)이다.
경상도 밀양출신으로 1558년(명종13) 김천 직지사(直指寺)에서 신묵(信默) 스님에게 출가했다.
허균의 사명송운대사석장비명(四溟松雲大師石藏碑銘)에는 “辛酉年(1561, 명종 16년) 禪科에 급제하였다. 화려한 명성이 점차 드러나매, 당시의 學士大夫와 詩人으로서, 가령 朴思菴(朴淳)·李鵝溪(李山海)·高霽峰(高敬命)·崔駕運(崔慶昌)·許美淑·林子順(林悌)·李益之(李達)와 같은 사람들이 모두 대사와 즐겁게 지내면서 시문을 주고 받아 詞林에 전파되었는데, 사람들이 이를 미담으로 여겼다.”라고 기록하였다.
1575년(선조8)에 선종(禪宗) 본사였던 봉은사(奉恩寺)의 주지로 천거되었으나 사양하고, 청허휴정(淸虛休靜, 1520-1604)을 찾아가 배우고 법을이었다.
1592년(선조25)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같은 해 7월 청허가 승려의 궐기를 위해 전국에 격문을 보내자 사명당은 연로한 스승 휴정을 대신해 8도도총섭에 임명된 후 전체 의승군을 이끌었고, 군량보급, 각지의 산성축조와 수호 등의 중책도 맡았다.
어경후 박사는 사명대사를 극난극복을 위해 애쓴 모습만이 아니라 법을 구하기 위해 애쓴 구법 모습과, 동년배 수행자들과 더 철저한 수행을 다짐한 갑회문의 다짐, 환속하면 더 많은 공명을 주겠다는 선조의 요청을 뿌리치고 수행의 길을 간 한결같은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했다. 또 일본과의 평화회담과 포로 송환등에 보여준 평화외교의 가교 역할 등에서 조선조 최고의 협상가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1738년 영의정 송인명(宋寅明)은 찬(讚)을 지어 “송운과 같은 분은 참다운 여래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요, 또 우리 儒道속의 인물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라고 극찬하고 있다.
총 10강으로 구성된 인문학강좌는 대불련총동문회(회장 최승태) 사단법인 대불이 주최하고 사단법인 대불 불교인문학습원(원장 이지범)이 주관하고 있다. “한국고승과의 대화” 주제로 “원효 의상대사에서 만해 성철 스님까지”를 부제로 한 인문학 강의는 원효, 의상, 도선, 의천, 일연, 나옹, 사명, 만해, 서산, 성철 스님을 주제로 한국불교에서 우뚝한 고승들의 가르침을 현대에 되새기는 강좌다.
3강부터 10강까지는 종각역 문화공간 온에서 열린다. 현장 접수도 가능하다.
대불련총동문회 창립 58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기획된 이번 강좌에 많은 이들의 관심과 동참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