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불교운동연합 40년 동지들 한자리에

2025-06-07     운판(雲版)

민중불교운동연합(약칭 민불련) 창립 40주년 기념식이 6월 6일 조계사 극락전에서 열렸다. 1985년 5월 4일 칭립하여 1991년 5월 해체선언한 민중불교운동연합의 40주년 기념식에는 단체와 관련있는 1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안부를 물었다.

이날 40주년 기념행사는 인묵 스님(대한불교조계종 어산어장), 공화춘 여사(멱정 여익구 초대의장 유족), 서동석 의장(민중불교운동연합 3기) 세사람이 공동 초청인이 되어 옛 동지들을 불러모았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박종철열사의 고문치사 사건을 처음 세상에 알린 4명이 모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살해 은폐조작 사건이 터졌을 때,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된 고문 경찰관들이 고문치사 은폐조작을 이야기하자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이부영 의장은 은폐조작을 쪽지에 기록을 하여 한재동 교도관에게 전달했다. 한재동 교도관은 이부영 의장을 숨겨준 협의로 수배 중인 전 서울구치소 교도관 전병용 선생에게 전달했다. 전병용 선생은 김정남 수석에게 전달하고, 김정남 수석은 함세웅 신부에게 전달하여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박종철 고문치사의 은폐조작 진상을 알리게 된 것이다. 이를 도화선으로 1987년 6월 10일 6월 항쟁이 일어났다. 6월 항쟁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의 기점이 되었다. 민불련 40주년 행사에 전병용, 김정남, 이부영, 함세웅 등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이 네분이 모두 참석했다.

이밖에도 조계종 전원로의원 법타스님, 전 교육원장 청화스님, 전 중앙종회의장 성문스님 등 많은 스님들이 과거 민불련과 고 여익구 의장과의 인연을 회상했다. 이밖에도 여연, 성연, 진관 스님들이 참석했고 김영배국회의원이 고려대 재학시절 개운사 시위에 참가했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총무원을 대표해서 사회부장 진경스님이 참석하여 지금 종단은 사회노동위원회 등을 통해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런 변화를 시작한 민불련의 공헌을 기렸다. 재가자 중에서는 이희선 정의평화불교운동연대 공동대표가 민불련이 앞장서서 10.27법난 진상규명에 앞장서고, 불교재산관리법 폐지에 앞장섰던 일들을 다시 회상했다.

조계사 대웅전 앞 계단에서 기념촬영을 한 참석자들은 만리장성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민중불교운동연합 1기 의장은 고 여익구씨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그는 출감 후 고은 황석영 등과 민중불교회를 조직해 활동하다가 월정사 탄허스님 회상에 출가했다. 이후 속퇴하여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사무총장을 지낸 그는 1984년 한상범 교수가 운영하던 불교사회문화연구소를 이어받아 인사동에 사무실을 냈고, 이를 터전으로 불교 사회운동진영을 엮어내 민중불교연합을 창립했다.

2기 의장은 고광진씨다. 1986년 5.3 인천항쟁과 관련 1기 의장 여익구가 수배되고 성연스님, 서동석, 진철승, 김승진 등이 구속되어 어려워진 민불련 활동을 이어받아 1987년 2기 의장으로 추대되었다. 고광진씨는 1987년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평민당 입당을 위해 의장을 사퇴했다.

3기 의장은 서동석씨다. 1988년 1월부터 의장대행을 맡아 민불련 조직을 추스르고 1989년 5월 총회에서 정식 의장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동년 6월 29일 자정 무렵 치안본부 대공분실(홍제동) 요원에 의해 민불련 3기 집행부 전원이 연행되었다. 저들은 《민중법당》 5호에 실린 민불련 정책과 강령을 이적행위로, 민불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한 뒤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구속하였다. 의장 서동석은 징역 3년을, 기획국장 이남재, 조직국장 김영균은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차민제는 집행유예를 받았다.

1기 의장 여익구는 이미 5.3.인천항쟁 관련하여 수배중에 있다가 검거된 바 있다. 집시법으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다.

검거를 피한 기획위원장 김경호(진솔)와 민불련 회원, 구속자 가족 등이 비상체제로 3기 조직을 운영하다 이남재, 김영균이 만기 석방된 후, 민불활동에 대한 감시와 상황변화로 인해 조직을 발전적으로 정리하기로 결정하고, 1991년 5월에 민불련 활동 중단과 조직 해체를 선언했다.

민중불교운동연합은 10.27법난을 사회여론화하고 끈질기게 문제제기를 했다. 9.7 해인사 승려대회 이후 10여 일 간의 개운사 불교자주화 투쟁을 마치고 조계사 10.27 법난 규탄대회를 기획하였으나 경찰이 조계사를 봉쇄했다. 장소를 봉은사로 옮겨 1986년 10월 27일, 10.27 법난 규탄대회를 열고 가두 투쟁에 나섰다. 경찰은 봉은사 경내에 최루탄을 발사하고 전경이 시위 참여자를 체포하러 사과탄을 던지며 사찰 경내에 진입했다. 사찰이 경찰에 침탈당한 최초의 사례일 것이다. 이날 가두투쟁 대열 앞에서 시위한 명진 스님이 구속되었다. 

이러한 끈질긴 투쟁 이어갔으나 막상 1988년 5공 청문회가 열릴 당시 법난이 의제에 들어가지 못했다. 민불련 회원들은 평민당사에 들어가 농성을 하여 결국 5공 청문회 의제에 넣는데 성공했고 강영훈 총리의 공식 사과를 받아낼 수 있었다.

민불련은 1986년 9.7해인사 승려대회에서 불교자주화를 선언하자 이를 계기로 불교관련 제악법의 폐지와 개정을 요구했다. 이로써 일제 사찰령을 이은 불교재산관리법이 폐지되고 전통사찰보존법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우란분절이 민속 백중 절기와 시기적으로 일치함에 착안하여 산자와 죽은자가 어우러지고 노동이 해방되는 축제의 장을 만들자고 1985년 ‘생명해방의 대축제’를 처음 기획하였다. 1회 행사를 화계사에서 열고자 했지만 경찰의 원천봉쇄로 김봉준화백은 걸개그림을 빼앗기고 연행되었다. 이 걸개그림은 끝내 되돌려받지 못했다. 인묵스님은 번 등 의식용품을 압수당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개운사(2회), 동국대, 인천시립대, 석왕사, 봉은사(3회) 등으로 이어가며 행사의 맥을 이었다.

비록 민중불교운동연합은 해체하였지만 활동했던 동지들은 주기적으로 만남을 가지면서 사회민주화와 불교개혁에 힘을 보탰다.

민중불교운동연합 창립 10주년이 되는 1995년에는 민불련 기관지 ‘민중법당 1-5호’와 신문 ‘민중불교 1-16’ 등을 모아 ‘민중불교’ 합본호를 발간했다.

2004년부터 흑석동 달마사에서 불교사회민주화운동인사 제1회 합동 천도재를 달마사에서 열었다. 안희대, 노일현, 김동수, 박종철, 이한열, 김동형, 김희정 등 민주화인사 총 22위 합동천도재를 봉행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김경남 본부장, 전태일열사 어머니 이소선 여사, 박종철열사 부친 박정기 선생 등 80여분이 참석했다. 이 합동천도재는 2012년까지 9차례에 걸쳐 봉행했다.

창립 20주년이 되는 2005년에는 민중불교운동연합 창립 20주년 기념좌담회를 불교여성개발원에서 열고 민중불교동지회를 처음 결성했다.

2012년 유명을 달리한 여익구 초대의장의 불교사회장을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봉행했다.

30주년이 되는 2015년에는 학술세미나를 열어 민중불교운동을 기념하고 달마사에 민중불교운동을 증언하는 푯돌을 세우기도 했다.

민주주의불자회는 2013년 자승 전 총무원장의 재임시도에 맞서 ‘희망의 불교 청정승단을 염원하는 9보1배’를 인사동 거리를 돌며 진행하고 성명을 발표했다. 2015년 세월호인양 촉구 시위를 하고 유가족들과 416시간 연속 농성을 했다. 이후에도 2017년 ‘민주주의불자회’로 이름을 바꾸고 명진스님 단식을 비롯한 종단개혁운동에 불교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2018년 종단개혁운동과 설조스님 단식에도 힘을 보탰다. 2024년에는 녹색병원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에 십시일반 동참했다.

민중불교운동연합 40년 연대기

1985.5.4. 민중불교운동연합 창립총회(서울 종로구 포석정식당 2층)

민불련 창립총회는 서울시 종로구 한글회관에서 갖기로 하였으나 전두환 정권의 경찰에 의해 대회 장소가 원천봉쇄됐다. 총회 뒤풀이 장소이던 포석정식당 2층(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뒤편)에서 열렸다.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약식 총회를 통해 여익구 의장 선출 등 1기 집행부를 구성하고, 고은 시인의 만세삼창으로 마쳤다. 당시 무장경찰과 사복경찰이 대회장 무단난입하는 과정에서 전일곤 불자가 다리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는 등 청년회원들이 다수 다쳤다. 이날 총회에 참석한 150여 명은 즉시 경찰에 의해 종로경찰서에 강제 연행되고, 이날 밤늦게 전원이 풀려났다.

1985.7.30. 민불련 기관지 《민중법당》 창간호를 발간(제5호까지)했다.

1985.8.31. ‘제1회 생명해방의 대축제’(서울 수유리 화계사)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됐다.

1986.5.3. 광주민주항쟁 이후 최대의 가두시위 ‘5.3인천항쟁’ 때 민불련 서동석 집행위원장, 성연스님, 문화부 간사 진철승, 회원 김승진 등이 구속되고, 여익구 의장은 수배됐다.

1986.9.7. 전국승려대회(합천 해인사)가 개최된 후, 9월 16일까지 서울 개운사에서 농성했다.

1986.10.27. 봉은사에서 10.27법난 규탄법회를 열고 가두투쟁을 벌였다.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경내 진입했고 명진스님이 구속됐다.  

1987.3.3. 박종철 열사 49재(서울 조계사 일주문 앞 약식천도재)를 공동 봉행했다.

1987.4.12. 민불련 비상총회(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염불암)에서 고광진 제2기 의장을 선출하고 집행부를 구성했다.

1987.6.10. 국민운동본부 주관의 국민대회 참가와 민주헌법쟁취불교공동대책위원회 주관으로 조계사에서 구국대법회를 열고, 독재타도 호헌철폐 민주헌법쟁취 등 거리 시위했다.

1987.9.4.~12. 민족민주열사 합동천도재를 내용으로 하는 생명해방의 대축제, 9.7해인사대회 1주년 맞이 대토론회, 광주항쟁사진전, 9.7해인사승려대회 영상물 상영 등을 가졌다.

1987.10.27. 10.27 법난 규탄 및 독재정권 타도 동국대 투쟁. 동국대총학생회와 석림회, 중앙승가대, 민불련이 함께 하고 3천 여명의 대중이 참여. 동국대 중문 앞 묵동 언덕 도로에서 대대적인 가두투쟁

1988.1. 1987년 12월 고광진 2기 의장 사퇴로 인하여 이듬해 1월부터 서동석 의장 권한대행 체제로 조직이 운영됐다.

1988.8.2. 국회청문회 의제에서 제외한 ‘10.27법난’ 안건채택을 위한 평민당사 농성과 다음날 김대중 총재와 농성단 면담으로 청문회 의제로 채택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철수했다.

1989.5.20. 민불련 제3기 총회(오후 3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포교원)를 개최하고, 서동석 3기 의장 선출과 함께 집행부를 구성했다.

1989.6.29. 자정 무렵 치안본부 대공분실(홍제동) 요원들에 의해 민불련 제3기 집행부 전원이 연행됐다. 《민중법당》 5호에 실린 민불련 정책과 강령을 이적행위로, 민불련을 이적단체로 규정,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여 의장 서동석은 징역 3년, 기획국장 이남재, 조직국장 김영균은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사무국장 차민제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여익구 전 의장은 이미 몇 달 전 5.3인천항쟁 관련하여 오랫동안 도피하다가 검거됐다. 여익구 의장은 경찰에서 함께 조직사건으로 엮으려 했으나 결국 집시법만 적용되어 1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았다. 이때 검거를 피한 기획위원장 김경호(진솔)와 민불련 회원, 구속자 가족 등이 비상체제로 3기 조직을 운영하다 이남재, 김영균이 만기 석방된 후 민불련 활동에 대한 감시와 상황변화로 인하여 조직을 발전적으로 정리하기로 결정하고, 1991년 5월에 민불련 활동 중단과 조직 정리를 선언했다.

1995.5.4. 민불련 창립 10주년 기념법회(서울 봉은사 심검당). 《민중불교》 합본호를 펴냈다.

2004.10.12. 불교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서동석 준비위원장)를 처음 결성했다.

2004.11.12.(음력 10.3.) 불교사회민주화운동인사 제1회 합동 천도재(서울 흑석동 달마사)를

개최했다. 안희대, 노일현, 김동수, 박종철, 이한열, 김동형, 김희정 등 민주화운동인사 총 22위 합동 천도재를 봉행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김경남 본부장, 이소선 여사,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 선생 등 80여 명이 참가했다.

2005.2.12. 민불련 창립 20주년 기념 좌담회(서울 종로구 수송동 불교여성개발원 교육장)를 개최, 민중불교동지회(회장 서동석)를 처음 결성했다.

2005.5.4. 민중불교운동연합 창립 20주년 기념법회(서울 조계사 극락전)를 개최했다.

2012.6.8. 유명을 달리한 멱정 여익구 초대의장의 불교사회장을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봉행하고, 일주문 앞에서 노제를 가졌다.

2012.11.16. 불교민주화운동인사 9회 합동천도재(서울 흑석동 달마사)를 마지막으로 봉행했다.

2013.10.3.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의 재임시도에 맞서 ‘희망의 불교 청정승단을 염원하는 9보1배’를 서울 종로구 북인사마당에서 진행하고 성명을 발표했다.

2015.3.31. 세월호 인양 촉구 피켓시위(서울 광화문), 유가족들과 416시간 연속 농성했다. 민주주의불자회(옛 민중불교동지회)로 모임 명칭을 바꾸었다.

2015.4.30. 민불련 창립 30주년 기념 표석과 식수(서울 동작구 흑석동 달마사)를 가졌다.

2015.5.7. 민불련 창립 30주년 기념법회(서울 수송동 불교여성개발원 교육장)를 개최했다.

2017~2018. 대한불교조계종 적폐청산 운동에서 민주주의불자회 이름으로 동참했다. 대중법회와 거리행진, 농성, 단식장 지킴이 등을 불교시민단체와 함께했다.

2024.12. 민주주의불자회는 녹색병원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에 동참했다.

2025.6.6. 민중불교운동연합 창립 40주년 기념식(서울 조계사 극락전)을 개최한다.

 

• 민중불교운동연합 창립 40주년 기념추진위원회 (무순입니다)

고 문 (승가) 청화, 지선, 보선, 성문, 명진, 법타, 진관, 여연, 현각, 효림, 현기, 현담스님

(재가) 김정남, 윤창화, 명호근, 강창일, 배영진, 전병용, 홍사성, 임동주, 옥시찬,

고광진, 김형균, 박강희, 박경준, 장범중, 김봉준, 이기선

지도단 (승가) 성연, 원혜, 법현, 명궁, 도관, 동출, 법안, 장적, 도수, 지공, 혜문, 범상스님

(재가) 최 연, 박준호, 김종찬, 이영근, 진철승, 정국교, 이혜숙, 정승석, 이주영,

이희선, 홍무흠,

추진위원장 인묵스님(승가), 공화춘(유족), 서동석(재가)

추진부위원장 김영국

추진위원 김경호, 공훈배, 이성배, 이용성, 이남재, 이원이, 이지범, 서현욱, 김봉래, 김승진, 김익석, 박찬웅, 임수현, 변대용, 사기순, 송세언, 우병기, 우목동, 전은산, 이석만, 전일곤, 조재현, 조환기, 허미선, 홍승희, 차민제, 김관태, 안삼화, 이호윤, 하기홍, 조재환, 노태훈, 장영욱, 장성준, 민종덕, 박승옥, 김동수, 이철용, 김윤길, 전대식, 김애라, 최승천, 유응오, 김형남, 홍종표, 백경녀, 임영미, 강태진, 양한웅,

최승태 회장(대불련총동문회), 이길수 회장(대한불교청년회),

유주연 회장(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