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폭 80년, 원폭피해자 2세 추모행사

원폭피해 공론화 시작한 김형률 추모비 앞에서 추모제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김형률의 마지막 메시지

2025-05-19     운판(雲版)

 

2025년은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2차대전이 종식된지 80년이 되는 해다. 그 사실 뒤에는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우리 국민들이 억울하게 피폭당한 아픔이 숨겨져있다.

1세 피폭에 이어 2세 3세로 이어지는 피폭 후유증의 무서움을 최초로 공론화한 사람이 고 김경률씨다. 원폭피해자2세이면서 인권평화활동가인 고 김형률님은 한국원폭피해자 2세로서 우리 사회에 처음 커밍아웃을 하고 2002년“한국원폭피해자2세환우회”를 만들어 원폭피해자 2세 문제를 국내외에 알려 왔다. 폐 기능이 일반인에 비해 30%밖에 되지 않는‘선천성 면역 글로블린 결핍증’이라는 희귀병을 앓으면서도 원폭피해자2세들의 인권의 문제와 비핵평화를 위해 노력하면서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절절한 외침을 남기고 2005년 5월 29일 35세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25년은 피폭 80년이면서 동시에 고 김형률님의 20주기가 된다. 고인을 추모하며 부모의 피폭과 이로 인한 병마로 앞서가신 원폭피해자2세들도 추모하는“제20주기 김형률과 앞서가신 원폭피해자 2세 추모제”를 5월 24(토)오후 2시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강당(합천읍 대야로 989)과 김형률추모비 앞에서 거행한다.

제20주기 한국원폭피해자 2세 김형률과

앞서가신 한국원폭피해자 2세 추모제

어느듯 피폭80년이 되었지만 반핵평화의 울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핵없는 세상을 외치며 꽃잎처럼 스러져간 그리운 님은 돌아오지 않지만

우리들 가슴속에는 해가 거듭될수록 반핵평화의 꽃으로 피어나고 있습니다.

 

원폭피해자 2세이며 반핵평화운동가인 故 김형률님의 제 20주기를 맞이하여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앞서간 한국원폭피해자 2세분들도 더불어 추모하는 자리에 모시고자 합니다.

바쁜 걸음 사뿐히 다녀가시면 그리움은 희망으로 함께 나아갈 것입니다.

------ 아 래 -------

▷일시: 2025년 5월 24일(토) 오후 2시

▷장소: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강당, 김형률추모비 앞

▷주최: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

▷주관: 한국원폭2세환우회

▷후원: 합천원폭자료관,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한국비핵평화시민연대KANPA (사)경기도원폭피해자협회, 합천평화의집, ‘민들레:한일청년이함께하는반핵평화’,사)생명평화아시아,아시아평화시민네트워크, 한일반핵평화연대),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 후원해 주실 분들은 한정순(김형률추모사업회) 계좌로 부탁드립니다.

계좌번호: 농협 302 1575 6004 11 한정순(김형률추모사업회)

연 락 처: 010 6766 1909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장

 

◎ 고 김형률님 추모사업에 늘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앞서가신 한국원폭피해자 2세분들도 같이 추모하오니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리며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드립니다.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 회장 이 태 재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 한 정 순

 

- 고 김형률 양력

원폭피해자 2세이며 인권운동가인 고 김형률 님은 피폭자인 어머니 이곡지여사와 아버지 김봉대 선생의 차남으로 1970년 6월 25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태어나면서 잦은 병치레와 거듭된 생사의 고비를 겪으며 병마와 싸워 온 고인은 폐 기능이 일반인에 비해 30%밖에 되지 않는 ‘선천성 면역 글로블린 결핍증’이라는 희귀병을 앓으면서 자신의 병이 피폭으로 인한 사실을 알고 2003년 3월 22일 ‘원폭피해자에게도 인권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원폭피해자 2세환우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남은 생을 바쳤다.

‘한국원폭피해자 2세환우회’를 조직하여 초대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부모의 피폭과 이로 인한 병마와 싸워가며 대를 이은 피폭의 굴레를 알리기 위해 정부와 국회, 사회단체, 언론사를 찾아다니며 ‘핵없는 세상을 일구기 위해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절절히 호소하였다.

“한국인 원폭피해자와 2세 환우들의 진상규명 및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실태조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던 중 2005년 5월 29일 35세의 꽃다운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피폭 2세로써 최초로 커밍아웃을 하고 우리 사회에 피폭 2세 문제를 알려 온 고인의 염원을 되새기며, 아직도 병마에 시달리는 수많은 피폭자와 2세 등 후손들의 아픔과 함께 하면서 핵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 뜻을 기리는 추모제를 매년 개최하여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