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 전총무원장 1주기,

절대권력 향유 불교 퇴행에 절대적 책임 정치 행보에 비판 여론

2024-11-19     운판(雲版)

자승 전총무원장의 1주기 행사가 성대하게 열렸다는 소식이다. 죽음 이후 1년여가 지났지만 그의 그림자는 아직도 종단 곳곳에 드리우고 있다. 공을 치하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로 인해 빚어진 한국불교의 퇴행이 너무나도 심각하기에 결코 그의 허물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기사를 정리하고자 했다.

마침 조계종 민주노조에서 종단의 절대권력으로 군림했던 자승 총무원장 시절을 회고하는 글을 노조카페에 올렸다. 이에 이를 전재하며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한다.

작년 2023년 11월 29일 자승 전 총무원장은 안성 칠장사 비전에서 방화 자살했다. 조계종단은 ‘소신공양’, 윤석열 정부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으로 조문하며 의혹의 죽음을 덮었다. 조계종단의 한달 가까운 윤석열 정부 종교편향 투쟁도 한마디 말없이 사라졌다. 전통사찰 문화재구역에서 자살한후 국정원 출동 등 숱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수사결과 발표는 없었고, 자살의 증거나 이유는 발표된 것이 없다.

오는 2024년 11월 17일 봉은사 법왕루에서 자승스님 입적 1주기 추모재가 열린다고 한다. 자승스님 평전까지 만들어서 봉정한다고 하니 사후에도 영웅화 작업은 계속되고 있다. 후대에는 자승원장을 이사를 겸비한 뛰어난 고승으로 칭송하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자승 총무원장 8년(2009~2017년)’을 평가한 2017년 불교포커스 기획기사를 다시 살펴보면서 자승원장이 어떤 승려였는지? 입적 1주기 추모재에 띄운다.
지금은 자승원장 상월결사 세력의 공격에 의해 폐간된 불교포커스 연재기사로 지금은 포털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으나 PDF로 남아있는 것을 소개한다.

 

자승 총무원장 재직 8년 (2009~2017)

① 압도적 지지 당선…‘봉은사 사태’로 발목

 

조계종 제33대, 34대 총무원장 자승스님의 임기가 오는 10월 마무리된다. 지난 2009년 압도적 지지로 총무원장에 당선된 자승스님은 2012년 ‘백양사 도박사태’ 당시의 약속을 번복하고 재임에 나서, 8년간 행정수반으로 조계종을 이끌어 왔다. 자승 총무원장 임기 8년을 연도별 주요 쟁점으로 되짚어 본다. [편집자 주]

2009년 치러진 조계종 제33대 총무원장 선거는 자승스님의 ‘독주’였다. 종책모임 화엄회ㆍ무차회ㆍ보림회ㆍ무량회의 ‘4자 연대’가 자승스님을 후보로 추대하면서부터 예견된 일이다. 일각에서 ‘기득권 수호를 위한 야합’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후보 추대식에 24개 교구본사 중 20개 교구본사의 주지스님과 81명 종회의원 중 60여 명이 참석해 ‘자승스님 당선’을 기정사실화 했다.

“승적 문제없다…깨끗한 선거로 귀감”

이 무렵 전국 사찰에 자승스님의 승적 의혹을 제기한 괴문서가 배포됐고, 자승스님은 기자회견에서 직접 해명했다. 스님은 “승적문제로 인해 종도들에게 번거로움을 드린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총무원이 이미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해 준 바 있다”고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는 선거인단 320명 가운데 290명의 지지를 얻어 새 총무원장에 당선됐다. 자승스님은 당선소감문에서 “관행화된 종단 선거 문화를 혁신하고, 청정 종단의 위상에 맞는 ‘깨끗하고 모범적인 선거’를 치러냄으로써 종단과 나아가 사회적으로 커다란 귀감을 남겼다”고 자평했다.

첫 집행부 인선은 ‘계파 안배와 교구본사 배려’라는 큰 틀 아래 진행됐다. 앞서 종책모임들은 ‘부실장은 각 종책모임이 복수로 추천해 인선하고, 국장급은 각 교구본사의 추천을 받아 안배한다’는 인사 틀에 합의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총무부장에 영담스님(보림회), 기획실장에 원담스님(무차회), 재무부장에 상운스님(금강회), 호법부장에 덕문스님(화엄회), 사회부장에 혜경스님(무량회), 문화부장에 비구니 효탄스님이 임명됐다.

계파ㆍ본사 안배한 인사, 대외 행보 ‘눈길’

대외 행보도 눈길을 끌었다. 자승스님은 취임식 전 첫 공식 외부 일정으로 용산참사 현장을 찾았다. 대립과 갈등의 현장에서 ‘불교적 해법’을 모색하겠다는 메시지가 담긴 행보였다. 취임사에서도 “한국불교는 이제 사회와 소통하며 화합의 단초를 마련하고 무한한 사회적 책임을 통해 우리 민족과 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0년 신년기자회견에서 ‘조계종 4개년 발전계획’ 로드맵을 발표하며 의욕적 행보를 보이던 자승스님은 ‘봉은사 직영지정’ 사태로 발목이 잡혔다.

당초 총무원이 3월 종회에 제출한 ‘도선사와 봉은사에 대한 직영사찰 지정안’에 대해 총무분과위는 “공론화 없이 추진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을 내놨다. 하지만 본회의에서 분위기가 역전됐다. 자승스님이 직접 종회에 참석해 질의에 답했고 표결이 진행되고서야 회의장을 나섰다. 결국 종회는 무기명 비밀투표로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을 가결했다.

‘봉은사 직영지정’ 사태로 소용돌이

후폭풍은 거셌다. 당장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이 반발했다. 스님은 “봉은사 직영지정은 밀통이고 야합”이라며 ‘정권 개입설’을 제기했다. 스님은 “봉은사 직영사찰 지정에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압력이 있었다”고 주장했고, 조계종은 “직영지정 과정에 대화가 부족했던 점은 인정하지만 외압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후 명진스님은 봉은사 일요법회에서, 조계종은 보도자료를 통해 공방을 이어가며 ‘봉은사 사태’는 사회적 문제로 비화됐다.

또 다른 쟁점은 ‘직영사찰 운영 방안’이었다. 총무원은 “강북의 조계사와 더불어 강남의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지정함으로써 강남지역 포교 및 불교 활성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정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직영지정 과정에서 도선사가 제외된 이유는 설명하지 못했고 “봉은사 운영 마스터플랜을 제시하겠다”며 개최한 설명회에서도 구체적인 운영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원로스님들과 불교단체 등이 중재에 나섰으나 해법을 찾지 못했던 ‘봉은사 사태’는 이 무렵 구성된 화쟁위원회로 공이 넘어갔다. 사태 발생 7개월 만인 10월, 명진스님은 ‘봉은사 사태’에 대해 참회하고 화쟁위의 중재안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차기 주지를 추천하는 문제를 두고 한 차례 번복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명진스님이 돌연 봉암사로 떠나고 당시 부주지였던 진화스님이 주지에 임명되며 사태는 일단락됐다.

화쟁위, 첫 시험대서 한계…‘4대강’도 중재 실패

그러나 ‘봉은사 사태’로 조계종의 사회적 신뢰는 추락했고 총무원의 미숙한 종책추진과 의견조율 부재, 체계적 대응 미비라는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이 무렵 갑작스럽게 발표한 ‘사후사유재산 종단출연령’ 역시 종무행정에 혼란을 가중했다.

‘봉은사 사태’는 화쟁위의 이후 행보에도 적잖은 부담을 지웠다. 화쟁위는 ‘차기주지 인사 문제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번복하고 인사추천권을 행사함으로써 ‘양명하고 공개적인 사태해결’이라는 명분을 스스로 저버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다른 의제인 ‘4대강 사업’ 역시 원칙 없는 행보로 논란을 자초했다.

2010년 5월, 문수스님이 ‘4대강 개발 반대’와 ‘이명박 정권 각성’ 등의 유서를 남기고 소신공양 했다. 이는 불교환경운동을 이끌던 수경스님의 ‘은적’으로 이어질 만큼 불교계에 큰 충격이었다. 5천여 명이 넘는 조계종 스님들이 시국선언으로 ‘4대강 사업 반대’ 의사를 밝혔다. 총무원도 “문수스님 추모사업과 그 뜻을 선양하기 위해 종단은 정성을 다해 ‘4대강 생명살림 불교연대’를 비롯한 단체 및 문도 여러분과 함께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예산파동’에 구호뿐인 “4대강 사업 반대”

이후 화쟁위는 여ㆍ야ㆍ정ㆍNGOㆍ종교계가 참여하는 4대강사업국민적논의위원회를 구성해 ‘화쟁적 해법’ 모색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공사가 상당히 진행된 데다 ‘책임 있는 중재’ 역할을 맡기엔 화쟁위의 역량이 부족했다. 결국 정부여당은 논의위원회 참여를 번복하고 일방적으로 4대강사업 예산을 포함한 정부 예산안을 처리해 조계종의 체면을 구겼다. 이른바 ‘예산 사태’로 조계종은 ‘4대강 사업 반대’ 입장을 처음으로 공식화 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정부여당에 회초리를 들겠다”던 조계종은 이후 4대강 사업과 관련한 행보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몇몇 스님들이 보 개방행사에 참석했다는 소식만 들려왔다. 결국 화쟁위의 첫 시험대에 매겨진 점수는 박했고, 이는 이듬 해 ‘아쇼카 선언’ 논란으로까지 이어졌다.

한편, 2010년 한해를 ‘봉은사 사태’로 허비한 조계종은 연말에 벌어진 ‘예산 파동’으로 2011년을 맞게 된다.


https://cafe.daum.net/jokbunion/98FJ/245

 

② ‘예산 사태’와  ‘아쇼카 선언’ 논란

 

조계종의 2011년은 이른바 ‘예산 사태’로 문을 열었다. ‘예산 사태’는 2010년 12월,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처리한 정부예산안에 템플스테이 예산 60여억 원이 삭감된 것으로 밝혀지며 시작됐다.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에 “정부지원 거부”

정부의 기류는 이미 감지됐다. ‘예산 사태’가 벌어지기 6개월 전, 당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대구기독교총연합회 소속 목사들을 만나 “사찰 몇 군데를 다녀보니 템플스테이용으로 짓는다고 하면서 너무 크게 짓고 있더라” “호텔처럼 20∼30개나 되는 방을 새로 만드는 것은 문제가 좀 있다고 본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유 장관이 자승스님을 예방해 사과하며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템플스테이 예산을 ‘시혜성’으로 바라보는 정부여당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계기였다.

이후 벌어진 ‘예산 사태’에 조계종은 초강경 대응으로 맞섰다. 조계종은 2010년 12월 9일 발표한 성명에서 “정부여당이 템플스테이 예산을 종교 편향적 입장을 가지고 삭감한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 규탄하고 △정부 예산 지원 거부 △4대강 사업 반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전국 사찰 출입 거부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전통문화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가진 이명박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지 않고 수행과 신도교육, 포교 등 종교 본연의 활동을 통해 전통문화 보전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불교 자립 계기 삼자”며 ‘자성과 쇄신 결사’ 선언

종단의 강경 대응을 환영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번 사태를 불교 자주와 자립의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조계종 중앙신도회는 종단의 입장에 지지를 표하고 “민족문화수호와 불교자주권 확립에 적극 대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자승스님도 2011년 중앙종무기관 “남에게 도움을 받는 것도 중독성이 있다”며 “문화재사찰도 정부의 지원을 받아 쉽게 운영하려고 하는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오래지 않아 크게 후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5대 결사’ ‘5도만 바꾸자’ 등의 구호도 이때 나왔다. 자승스님은 2011년 1월 26일 발표한 담화문을 통해 ‘조계종 5대 결사’를 선언하며 “그동안 불교의 힘만으론 문화재 보존, 전통사찰 보수 등에 한계가 있어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조금 쉽게 가보려 했던 측면이 있었다. 이젠 아니다. 정부의 인식이 이 정도라면 예산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10년, 20년이 걸리더라도 신도들의 십시일반으로 우리가 해내겠다. 이번 사건은 불교가 가야 할 길을 확인시켜 줬다”고 했다.

종단의 이 같은 ‘결사 선언’에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았다. 조계종이 개최한 ‘한국불교중흥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불교사회정책연구소 법응스님은 “참회와 반성의 주인공은 우리이다. 남의 일 이야기 하듯 할 것이 아니라 냉철한 비판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계종이 역설하는 ‘자성과 쇄신’이 철저하거나 뼈아프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6개월 만에 “국고지원 정상 집행”…‘구두선’ 비판

우려는 곧 현실로 드러났다. ‘5대 결사’를 통해 종단의 자성과 쇄신을 이끌어 내겠다던 선언이 6개월 만에 흐지부지 마무리 된 것이다.

입장변화가 감지된 건 정부의 2012년도 예산안 확정을 앞둔 6월 초. 조계종은 보도자료를 통해 ‘대정부 긴장관계 국면전환’과 ‘자성과 쇄신 결사’에 종단의 힘을 집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정부 관계에 있어서의 종단운영 및 사찰의 관계 정상화’가 필요하고 ‘결사를 통한 한국불교의 내적 성찰과 쇄신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곧이어 7월 자승스님은 “정부여당과의 소통 중단과 출입제한 조치를 모두 해제하고 국고 지원 예산도 정상적으로 집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스님은 담화문에서 “지난 6개월 여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종단 전체가 한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으며 종도 스스로 자존과 자립의 문제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불사심의위원회’를 설치해 국비 보조 문제를 명확하고 투명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국고 보조금 횡령 사건은 지금까지 되풀이되고 있다.

‘5대 결사’는 결사 전담기구를 신설해 추진하겠다고 했다.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 출범의 시작이다. 하지만 ‘위로부터의 개혁’인 자성과 쇄신 결사는 종도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역부족이었다.

조계종의 입장 변화에 불교단체들은 ‘불교자주화 선언이 구두선에 그쳤다’고 비판했다. 정부여당은 물론 국고보조금 수혜자인 사찰 주지들의 인식변화가 보이지 않거니와, 종단 지도자들의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자기희생 없이 종도들에게 ‘자성과 쇄신’을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결사본부 발족…‘아쇼카 선언’으로 혼란

이 같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조계종은 도법스님을 추진본부장으로 한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를 설립한다. 화쟁위원회와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종교평화위원회가 통합된 종령기구다. 도법스님은 “(결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내용이나 준비된 것이 없는 실정이지만, 잘해야 한다는 열정 하나로 마음을 냈다”고 본부장 수락 이유를 밝혔다.

결사본부는 출범 직후인 8월 종교평화선언, 일명 ‘아쇼카선언’이라는 커다란 암초를 만난다. 화쟁위원회는 2010년 봉은사 사태와 4대강 사업에 이어 2011년 종교평화와 남남갈등을 의제로 채택했다. 특히 종교평화 정착을 위해 ‘21세기 아쇼카 선언’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고대 인도의 아쇼카 왕이 돌기둥에 새긴 칙령을 통해 ‘다른 종교의 가르침에도 귀를 기울이라’고 권고한 내용에서 착안해, 현대적 종교평화 선언을 만들겠다는 뜻에서다.

그러나 8월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 초안이 공개되자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이웃종교에도 진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열린 진리관’이 기독교 창조론을 인정하고, 부처님의 전법선언을 포기했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였다. 이어지는 논란에도 화쟁위는 ‘종교평화선언 발표’를 강행했으나, 종정 법전스님이 “선언문의 취지는 공감하나 불조혜명의 뜻을 잇기 위해 내용을 충분히 가다듬고 차기 종정 스님이 발표하라”는 뜻을 밝힘에 따라 유보됐다.

이후 도법스님과 종회의원 법안스님이 종정예경실에 종정스님 당부말씀의 진위를 묻는 ‘공개편지’를 보내며 파문은 다시 확산됐다. 결국 결사본부 자문위원회의 제동으로 종교평화선언은 해를 넘긴 2012년 3월 종정 추대법회에서도 발표되지 못했고, 재검토 논의만 이어지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출범 2년 “10점 만점에 6.5점…겨우 낙제 면해”

‘예산 사태’와 ‘아쇼카 선언’ 논란으로 한 해를 보낸 조계종은, 출범 2년을 맞은 33대 집행부의 성적을 ‘10점 만점에 6.5점’으로 매겼다. 당시 조계종 대변인이자 기획실장 정만스님은 “낙제만 겨우 면한 정도”라며 △승려복지제도 시행 △승가교육제도 개선 △주지 인사고과제 시행 등을 성과로 꼽고, 지지부진한 ‘자성과 쇄신 결사’에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조계종은 2011년을 ‘낙제점을 면한 점수’로 넘겼으나, 2012년 ‘낙제점’을 받는 더 큰 시련을 맞게 된다. 바로 백양사 도박사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