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 종상스님, 비판적 행장

불국사를 수십년간 장악한 정치승

2024-11-13     운판(雲版)
불교닷컴

 

불국사 회주 종상스님이 11월 8일 입적했다. 법랍 60년, 세납 76세. 12일 열린 다비식에 종단 고위층이 총출동했다. 불교계 언론들은 종상스님의 생애에 대해 찬양 일색이다. 죽은 이의 허물을 구태여 거론치 않으려는 자비심의 발로라고 하기에는 지나치다. 칭찬이 지나치면 아부가 된다.

조계종단에서 가장 부유한 승려로 알려진 종상스님의 유산은 과연 종단으로 환수될 수 있을 것인지도 관건이다. 자승스님의 유산, 월주스님의 유산 등도 종단으로 환수된 바 없으니 종상스님의 경우도 기대할 바 없다는 비관적 의견이 실현된다면 슬픈일이다.

하여 운판은 일대의 사판승, 정치승이었던 종상스님의 행장을 되짚어 봄으로써 불교의 구조적 문제점을 살펴보는 계기로 삼고자 간략한 글을 싣는다.

종상당 행장

현대 한국불교의 장자종단 대한불교조계종에 이런 저런 큰일이 있을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여 인구에 회자되는 큰스님 한 분이 있었으니 속명은 김상술(金相述)이며 법명은 종상(宗常)이다.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석굴암 주지, 청계사 주지, 불국사 주지, 불교방송 이사, 동국대 이사 등을 지냈고 2020년 11월 조계종이 비구에게 주는 가장 높은 법계(法階)인 대종사(大宗師)에 올랐다. 2022년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추대되었다.

1965년 법주사에서 월산스님(경허 만공의 선맥을 이은 덕숭문중 금오스님의 제자로 신흥사 동화사 법주사 불국사 주지와 총무원장 원로회의 의장을 지내고 1997년 입적하셨다.)을 은사로 출가해 사미계를 수지하고, 1973년 법주사에서 석암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재주가 출중하고 능력이 다대하여 스승의 사랑과 총애를 듬뿍 받았다.

스님은 이재에 특출하여 재물이 모이는 곳을 밝히 알고 남보다 먼저 선점하여 거만의 부를 축적하였음은 물론 쌓인 부를 기반으로 따르는 이를 널리 기르니 세력이 일어남이 불과 같았다. 혹 뜻을 달리하는 이가 있으면 세력으로써 누르고 금전으로 회유하거나 목 좋은 사찰 주지자리로 달래니 감히 면전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이가 없었다. 연간 수백만의 관람객과 백억원이 넘는 입장료 수입이 걷히는 불국사와 석굴암을 관장하면서 불국사 문중에서 힘을 발휘한지 수십 년에 이르니 쌓인 부를 능히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스님의 속가 친인척도 스님 덕분에 절에서 일을 하거나 목 좋은 매점운영권 등을 확보하니 한 사람이 잘되어 온 집안이 다 함께 잘살게 된 아름다운 사례라고 할만하다.

70년대부터 불국사 재정을 한 손에 주무르고 사금고처럼 운영하며 사찰 수입의 많은 부분을 빼돌려 수십억 원대의 호화빌라를 소유하는 등 개인치부를 일삼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1991년 사형인 종원 스님이 불국사 주지로 취임하면서 불국사의 잘못된 현실을 혁파하려하자 위기를 느낀 종상 스님이 1993년 12월 경 추종자 10여명과 더불어 종원 스님을 불국사 경내에서 집단테러했다. 그 사건으로 수배되어 도망다니다가 대구지검 경주지청에 의해 구속되었으며 94년 3월 종단으로부터는 ‘체탈도첩’의 중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94년 4월의 종단개혁 과정에서 능수능란한 정치적 처세를 통해 94년 5월 재심호계위에서 초심의 ‘체탈도첩’을 ‘공권정지 3년’으로 경감하는데 성공하였다. 사형에 해당하는 종단의 중징계를 가벼운 3년 형으로 바꾸는 재주야말로 세인들이 경탄해 마지않는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여파로 노른자위 사찰인 관악산 연주암을 빼앗긴 것은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전국수배되어 손발이 묶인 가운데 용주사 주지 정대스님이 자신의 상좌 자승을 연주암 주지로 임명한 것이다. 지키려는 종상도 빼앗으려는 자승도 서로 전국구 조직폭력배를 동원하여 일촉즉발의 긴장이 감돌았다. 방검복을 입고 현장을 지휘했던 자승스님이 이후 정치적으로 성장하는데 연주암이 뒷받침이 되었다. 이때 자승 측에서 폭력배를 동원한 이가 뒷날인 2012년 자승의 도박과 룸살롱 출입 등 비리를 폭로하다가 지병으로 죽은 김세민이다. 이 때 서로 적이었던 종상과 자승 두 사람이 뒤에 도박으로 긴밀해져 정치적으로 한 편이 됨으로써 종단을 좌지우지하는 입장이 되었으니 사람 인연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2000년에는 본인의 세력권인 청계사에 3천년에 한 번 핀다는 우담바라꽃이 피었다는 대대적인 선전을 통해 신도들의 돈을 긁어모았다. 문제는, 우담바라라고 하는 것이 실은 풀잠자리 알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108일 대법회에 법문을 온 철웅스님은 “ “우담바라는 본디 갖가지 형태로 나타나므로 이것을 두고 가짜다 진짜다 논할 것이 아니며 오히려 여러분 스스로를 우담바라와 같이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가짜 진짜를 논함으로써 민망함을 드러냈다. 같은 시기에 우담바라를 내세워 혹세무민한 사찰은 자승스님의 관악산 연주암 등이 있다.

스님은 당신의 구좌인 불국사와 석굴암이 중앙 종단에 납부해야 할 분담금을 상습적으로 체납하였다. 하지만 감히 그 잘못됨을 꾸짖는 이가 없었다. 밀린 분담금이 막대한 액수에 이르자 오히려 종단이 머리를 숙여 선처를 바라니 밀린 금액 가운데 대부분을 탕감하여 납부하지 않는 조건으로 분담금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종단 내외에 힘과 능력을 과시한 것이다.

(석굴암은 2000년 당시 배정된 분담금 3억 6000만원을 체납하다가 2001년부터 분담금을 2억 1758만원으로 감액하는 조건과 함께 1억 원을 탕감 받아 2001년 11월 경 2억 6000만원을 납부했다. 그 직후인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조정된 분담금 2억 1700여만 원을 다시 체납하다가 2005년 11월 분담금을 납부하면서 2003년 분담금 2억 1700여만 원을 전액 탕감 받았으며 2004년 분담금 가운데서도 2억 1200여만 원을 탕감 받아 500여만 원만 납부했다. 다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매년 책정된 분담금 1억 9300여만 원을 체납해 총 5억 7900여만 원을 미납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2010년 분담금까지 납부하지 않고 있어 석굴암이 납부해야 할 체납분담금은 7억 7300만원에 달해 종회에서 심각하게 논의되기도 하였으나 결국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수 있으랴 하는 문제로 귀결되고 말았다. 2010년 <법보신문> 기사)

스님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는 것은 2003년 골프연습장 사건이다. 사적 명승 1호이며 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천년고찰 불국사 경내에 개인 골프연습장을 만들어 작대기를 휘두르다가 뜻있는 세인들의 눈총을 받았다. 불국사 경내 정혜료 앞에 테니스장이 들어선 것은 90년대 초반으로 이 또한 불법이지만 백번 양보하여 스님들의 건강증진을 위한 것이라고 해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중 일부를 밀어버리고 2003년 6타석 골프연습장을 만든 것은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다. 법적으로는 문화유산 보존에 미치는 영향 등을 검토해 허가받는 절차를 생략한 것이 일차적으로 논란이다. 나아가 출가 수행자가 고급사교스포츠인 골프를 즐긴다는 것도 세인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인데 더욱이 주지와 친한 스님들만 이용하는 특권시설로 이용하고 해외 골프원정까지 자주 즐겼다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종단의 청정한 수행자들이 얼굴을 들 수 없게 만들었다. 2005년에는 요트 구입, 환치기 등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사실로 판명될 경우 모든 공직에서 사퇴할 뿐 아니라 어떤 징계라도 감수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스님은 정치적 풍향에도 민감하여 언제나 승리하는 쪽을 읽고 힘을 보태니 한번도 실패함이 없었다. 평소 재력을 바탕으로 관리하던 금오문도의 여러 본사가 총무원장 선거에 발휘하는 표를 바탕으로 주요 후보자를 관리하고 베팅하니 종단의 어떤 권력도 출범하기 전부터 이미 종상 스님에게 꼬를 꿰인 형국이라 감히 건드릴 자가 없었다. 불국사 표는 물론 법주사 또한 종상 스님의 개인표와 다름없다. 24개 교구본사 가운데 2곳 이상을 움직이니 박빙의 경쟁구도에서 캐스팅보드를 쥔 것과 같았다.

스님은 도박을 즐겨하여 종단의 큰 손들과 더불어 거액의 판돈이 오가는 포커판을 열고 나아가 불국사에 자리를 마련하여 여러 스님이 즐기도록 하니 법에 명시된 도박장 개설죄다. 도박자리에서 주요 사찰의 주지 인사가 오가고 감사의 답례로 거액의 정치자금이 오갔으니 작금 종단의 부패와 매관매직은 오로지 종상 큰스님과 함께 즐긴 큰스님들의 덕분이라 할만하다.

스님의 사형인 장주는 평소 종상 스님을 명분으로는 사제이지만 실질로는 어른으로 모신 덕분에 떡고물을 나누어먹는 은총을 누렸다. 종회에 입성하여 종회 부의장까지 역임할 수 있었던 것은 장주 본인의 능력이라기보다는 오로지 종상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2013년에 들어 둘 사이가 틀어져 오래 머물던 오어사에서마저 쫓겨나게 되자 분을 못이겨 검찰에 출두하여 스스로의 도박죄를 토설하여 종상을 궁지에 몰고자 했다. 자해와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이는 종상의 법력을 너무나도 가벼이 본 것이다. 종상 스님이 관계요로에 차분히 손을 쓴 덕분에 태산명동서일필도 아니라 무혐의로 결론내리니 쥐 한 마리 잡지도 못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종상의 도박멤버이자 정치적 동반자인 자승이 2013년 조계종 총무원장 재선에 성공하자 종상의 권력은 날개를 단 듯 힘을 얻었다. 이미 ‘약속드립니다’ 문건으로 자승의 1차 임기에 권력을 보장받았던 종상은, 자승의 재임시 강남의 노른자위 봉은사를 약속받는 거래를 했다. 당시 중앙종회 종책모임 불교광장 대표인 지홍스님이 기자회견을 열고 항의했지만 대세에 지장없었다. 세인의 눈을 의식해 원학스님을 명자주지로 임명시키고 자신의 졸개들을 총무와 재무 등 실무라인에 포진시키니 봉은사의 실제 주인이 종상임을 의심하는 이가 없었다.

이후로 불국사 박물관장이라는 직함으로 활동함으로써 조계종의 ‘관장시대’를 활짝 열었다. 주지 등 공식직함을 갖지 않았으면서도 막후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이 유행처럼 관장직함을 가지고 조계종단을 움직였다.

말년에 병환으로 투병하면서도 불국사에 대한 지배권을 놓지 않았다. 본사 주지 임기가 만료되어 새 주지를 선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뜻에 맞지 않는 이가 후보로 등록하려 하자 2022년부터 후보등록을 거부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일이 거듭되어 선거파행이 2년동안 계속되자 2024년 총무원에서는 주지직무대행을 직권으로 보낼 수 있다며 경고했다. 하여 2년만에 겨우 주지선거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